📮 안녕하세요! 서형이에요. 온라인 편지를 써보겠다고 한 지 두 달이 지났는데 이제야 첫 번째 편지를 보내네요. 제 소식을 궁금해하고 기다려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한국은 갑자기 많이 추워졌다고 들었어요. 저는 일주일 전부터 장갑을 꺼냈고 목도리를 샀고 핫팩을 개시했어요. 전기장판은 지난달부터 켰고요. 오늘 밤에는 프라하에 첫눈 소식이 있다고 해서 기다리는 중이에요.
편지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 편지를 쓰게 된 이유를 전해요.
- 고마운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하고자 : 프라하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자마자, 노트 상단에 '도움을 준 사람들'이라고 제목을 크게 적어두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려보았어요. 손이 쉴 틈 없을 정도로 감사한 인연이 많았어요.
- 새로운 형태의 기록에 도전해보고자 : 기록을 좋아하는 만큼, 오랫동안 힘을 들이지 않고 쓸 수 있는 기록 형태를 언제나 고민해요. 어느 날, 친구가 유럽 가서 뉴스레터 써보면 어떠냐고 물어봤는데, 그 순간 너무 설레는 거예요. 유럽에서 하고 싶은 몇 안 되는 리스트에 넣어두었어요. 한정된 독자에게 개인적인 장문의 기록을 보내는 건 꽤 용기가 필요하지만 일단 해보려고요.
- 기록을 다시 펼쳐 볼 미래의 나를 위해서 : 아무 날도 아닌 날, 옛날 일기장을 아무 곳이나 펼쳐보면서 과거의 나를 다시 들여다보는 취미가 있어요. 힘들었던 모습을 토닥이고 위로해주며, 조금씩 성장하는 자신을 깨달아요. 이 글도 아마 저에게 그런 위로를 해줄 거예요.
- 글쓰기 연습해보고 싶어서 : 읽다 보면 느끼시겠지만, 글솜씨가 부족해요. 글쓰기 연습을 위해서는, 공개적인 글을 정기적으로 작성해보면서 올바른 표현을 찾아보고 마음속 말을 전하는 힘을 꾸준히 길러야 한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연습해보아요.
- 누군가를 위해서 : 저는 어떤 사람이 올린 사진 한 장을 보고 여행을 계획하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문장 하나만 발견해도 책을 읽기 시작해요. 제 짧고 작은 이야기로 누군가가 어떠한 새로운 시작을 해본다면, 그냥 잠시 떠나있는 기분이라도 느낀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 : 편지
📓 : 일기장 발췌
📦 : 수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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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유럽에, 왜 체코로, 왜 워홀을 왔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시작은 그냥 유럽 여행이었어요. 대학교 마지막 학기를 현장실습 인턴으로 보내던 중, 본부장님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고, 높은 분과 식사하는 자리가 처음이라 뚝딱거리는 와중에도 '대학생 때 유럽여행은 꼭 가라'는 말이 귀에 콕 박혔어요. 유럽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고 인턴 월급의 80% 이상을 모았고, 3개월까지 무비자로 있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3개월 유럽 여행을 떠날 마음을 먹었죠. 코로나로 교환학생도 취소되고 유럽 여행도 못 갔는데 이제 때가 온 것 같았어요.
3개월짜리 여행에서 1년짜리 워킹홀리데이로 마음을 바꾼 건, 역시 인턴 하는 동안이었어요. 인턴 일을 하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첫 번째로는, 취업하면 정말 많은 시간을 일터에 쏟아야 한다는 것. 몇십 년 동안 직장을 다닌 엄마아빠가 존경스러워지고 선배님들이 멋져 보이는 한편,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는 것도 느껴졌어요. 두 번째로는, 팀원분 모두 교환학생, 워홀, 어학연수, 취업, 파견 등 해외 경험이 있다는 것. 글로벌 팀이라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해외 살이에 대한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이었던 제가 해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선배님들은 모두 같이 등을 떠밀어주셨어요. 바삐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한 곳에서 일상을 살아보며 소비자가 되어보고 친구를 만들고 작은 부분까지 살펴보고 싶은 마음에 '오래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오랫동안 있을 방법에도 유학, 어학연수, 교환학생 등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었지만 빠른 시일 내에 준비할 수 있고 개인 시간이 많고 직접 모든 것을 계획할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를 선택했어요. 사회에 나가기 전, 많은 사람을 만나고 대화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한인민박 스텝이 꼭 그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스텝 지원서를 쓰고 민박집 사장님과 화상 면접을 봤어요. 그리고 인턴 근무 마지막 날에는 체코로 떠나는 왕복 비행기표를 구매했어요.
체코로 온 건 큰 이유는 없는데 비자 발급이 어렵지 않고, EU 국가이며, 유럽 내 이동이 편리하고, 스텝 일자리가 많은 곳이라서요. 정말 별거 없죠. 그전까지는 체코와 프라하에 어떤 것이 있는지도 잘 몰랐고 낭만 같은 것을 두고 체코를 선택한 건 아니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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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홀을 떠나면서, 재미를 위해 작은 목표들을 세웠어요
✧ 그림만 그려서 노트 한 권 채우기
✧ 스마일 프로젝트 : 유럽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스마일 모양을 수집하는 일
✧ 1일 1장 일기, 1일 1초 영상
✧ 커버레터 뿌리고 면접 보기
✧ 스냅사진으로 돈 벌어보기
✧ 현지 친구 만들기
✧ 해외살이가 잘 맞는지 느껴보기
✧ 디지털 노마드 경험해보기
✧ 맥니멀리스트 플리마켓 열어보기
벌써 이뤄낸 것도 있고, 이루고 있는 것들도 있어요. 편지를 보낼 때마다 조금씩 점검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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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 마냥 설렘,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하면서 응원받음.
6월 : 돈을 열심히 모으느라 일이 많음. 서류작업이 많아서 조금 막막해짐.
7월 : 친구들에게 캐리어를 선물 받음. 송별회를 핑계로 친구들을 만나서 많이 놀러다니면서 여행에 대한 기대가 높아짐.
8월 : 서울이 너무 예뻐 보이고, 한국이 너무 좋음. 한식만 주야장천 먹음. 엄마랑 노는 게 너무 재미있음. 가기 싫음.
9월 : 그래, 떠나야지. 상황을 받아들이고 마음의 준비도 충분히 함. 긴장 반 설렘 반.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두근거림.
인턴 마지막 날 비행기표를 끊고, 워킹홀리데이 비자 인터뷰를 신청하고, 체코대사관이 권유하는 의무 보험을 들고, 국제학생증을 발급받고, 키우던 화분들을 당근마켓에 나눔하고, 이삿짐을 싸고, 할머니를 보고 오고, 디지털 노마드 체험 차 프리랜서 일을 받아보고, 엄마에게 문구점 택배 보내는 방법을 알려주고, 보고 싶을 사람들을 만나고, 그림 도구를 사고, 1년 치 렌즈를 사고, 비자 발급이 늦어지고, 송별회를 핑계로 고등학교 친구들을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고, 비행기를 전날에 급하게 한 번 취소하고, 과외를 정리하고, 공모전을 준비하고, 이민 가방 20kg과 캐리어 23kg짜리를 들고 공항에 갈 때까지 4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나갔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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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9월 8일에 쓴 일기 : 떠나는 길에 울면서 쓴 일기
떠나는 며칠 전 엄마가 슬프다고 이야기할 때는 잘 몰랐는데, KTX에 오르는 나를 배웅해주는 엄마를 보며, 막상 엄마를 마지막으로 본다고 생각하자, 아니 무슨 생각이 떠오르기도 전에 엄청 눈물이 나왔다.
나는 너무 빠른 속도로 엄마랑 멀어지고 있다. 앞으로 더 빠른 속도로 멀어지겠지.
예쁘고 산 많은 한국의 시골 풍경을 보며 마음을 달래려고 할 때마다, 내 뜻대로 해 줄 생각은 없는지 자꾸만 터널이 나왔다. 언제 끝나는지 모를 깜깜하고 긴 터널이 나올 때마다 검은 유리창에 내가 비쳤다. 울고 있는 나를 보고 싶지 않아서, 애써 나와 눈을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안경을 끼고 마스크까지 끼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옆자리 계신 어르신 분은 눈치채셨을 수도 있지만.
가장 먼저, 그리고 많이 든 생각은 '나 어떻게 살지' 였다. 태어나서부터 소속이 없었던 적이 없는데 이제 나는 집도 없다. 그게 제일 막막했던 것 같다. 내가 개척해가야 하는 것을 너무 잘 아니까 더 그렇다.
글을 여기까지 싸지르고 나니까 진정이 된다. 울음이 멈추고 이제야 한국의 산맥이 보인다. 엄마 얼굴을 떠올리니 바로 울음이 나올 것 같아서 그건 조금 미뤄두고 가족 톡방을 보는 것도 미뤄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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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9월 10일 일기 : 비행기 탄 지 7시간 지나고 잡은 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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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있다. 나는 생각보다 두려움이 많아서 사람에게 받을 상처를 미리 걱정한다. 그들은 정작 아무 생각 없을 텐데. 상처를 받기도 전에 걱정하느라 결국 내가 힘든 길을 선택한다. 예를 들어 캐리어를 택시에 실을 것이 걱정되어서 혼자 버스 타고 다시 돌아온다든지, 버스에 실기 애매해서 50kg 캐리어를 끌고 역까지 걷는다든지. 이런 시작이라 스스로 속상했지만 뭐 됐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시도하면 언젠가는 달라져 있겠지. 내가 고생하지 않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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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타고 서울 올라오면서 울었던 게 민망할 만큼, 비행기를 기다리고 탑승하고 떠오르는 순간 정말 행복했다. 내가 떠나는구나. 떠나! 떠나나? 떠나고 있어!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에서 처음 오렌지 주스가 아닌 와인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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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옆좌석이 비어있어서 정말 기뻤는데, 스크린 고장 나서 온 사람들로 채워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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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온도가 -32도 로 되어있길래 잘못 나온 건가? 화씨인가? 싶었는데 바깥 온도가 그렇다는 듯. 그래서 비행기 안이 추운거였어. 지금은 -57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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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에서 바깥 풍경을 보여주는데 참 척박하고 넓직한 땅 위를 지나 가고 있다. 세계는 너무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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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이 총 4가지가 있었는데 샤워실인 줄 알고 안 열어본 곳이 가장 쾌적했다. 화장실 같이 기다리던 외국인이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나는 내리기 전까지 몰랐겠지.
+ 비행기를 탄다고 아빠에게 카톡을 보내자, 아빠에게 온 답장 ✉️
유럽에 내리는 첫발에 영광이 함께 하기를... 아주 찬란하게... 네 작은 두 발에 항상 행운이. 네 발자국이 닫는 땅들에도 평화와 영광이 함께 하길. 조심하고. 잘 다녀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낯선 곳에서도 기죽지 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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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장을 꾹꾹 눌러 담은 건지 몇 분에 걸쳐서 이 문자가 왔다.
📓 경유 비행기를 기다리며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승했는데 전부… 전부 … 외국인이었다. 물론 거기서는 나도 외국인이지만. 내 소속이 대학생에서 한국 사람으로, 한국 사람에서 동양인으로 넓어졌다. 소속이 넓어지면 소속감은 낮아진다. 동양 사람만 봐도 반가웠다. 한 외국인이 말을 걸었는데 그거마저도 긴장되었다. 괜히 나를 더 쳐다보는 것 같고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고, 말 그대로 쫄아있었다. 비행기를 타서는 곧 귀국이라는 설렘과 수하물 분실 걱정의 긴장이 쌓여서인지 프랑크푸르트에서 프라하로 오는 내내 잤다. 한 번도 눈을 뜨지 않았다. 그 비행기에서는 정말 거의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비행기에 내려서는 컨테이너 벨트 앞에서 한없이 기다렸다. 다행히 내 귀여운 터그 택이 눈에 띄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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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프라하 거리를 나서는 첫날. 가방에는 노트와 펜 한 자루만 챙겨서 나왔다. 사장님께서 코스를 추천해주셨지만, 그냥 나서서 지도도 보지 않고 발 닿는 대로 걸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일제히 향하는 곳이 보이고 투어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책에서 봤던 관광명소도 나왔다. 잘 왔네? 여행자의 시선으로 오래 낯설게 머물고 싶어서 이런 곳은 아껴 보려고 했는데. 벤치에 앉아서 바로 이 만년필로 내가 거의 유일하게 알고 있는 틴성당을 그렸다. 내 첫 프라하 그림. 만년필도, 유럽의 풍경을 그리는 것도 나에게는 모두 처음이다. 어색하고 부족해 보이지만 충분했다. 유럽을 즐기기에 아주 충분하다. 내게 그림이라는 도구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갑자기 예고 없이 빗방울이 떨어졌다. 말 그대로 몇 방울 정도였다. 만년필 잉크로 그린 탓에 살며시 번져버렸지만 나는 그런 우연이 만들어낸 순간이 내 도화지에 담겨서 더 감사했다. 고 생각하다가 비가 갑자기 너무 많이 와버려서 나무 사이로 피신했다. 안타깝게도 그곳은 말똥 냄새가 아주 심해서 서둘러 마무리만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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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스마일 수집 : 2022년 9월 17일
📓 첫 정식 손님으로 온 수라 언니. 정말 예쁜 미소와 친절한 마음이 기억에 남는다. 아, 양식 샐러드를 차분히 먹는 모습도. 언니랑 그 유명하다던 꼴레뇨 맛집도 다녀오고 레토나 공원도 함께 산책했다. 비가 와서 넘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언니는 마지막까지 미소를 자주 보여주었다. 체크아웃하는 날에는 날 위한 초콜릿도 선물해주었다. 나는 언니에게 내 메모지를 주었다. 수라 언니의 스마일은 언니를 닮았다. 입꼬리로 활짝 예쁘게 웃는 것도, 하트 위의 포인트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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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로 찍은 사진 : 2022년 9월 19일
민박집에서 1분만 걸으면 나오는 거리예요. 프라하는 하늘이 유명하다지만, 사실 맑은 날 반, 흐린 날 반이에요. 집을 나설 때마다 노트를 챙길지, 카메라를 챙길지, 둘 다 챙길지 고민하곤 하는데 이 날은 둘 다 챙겨나온 첫 날이었어요. 오랜만에 본 맑은 프라하 하늘과, 한국에는 없는 모양의 전봇대와, 규칙없이 다채로운 건물이 한 번에 담겨서 마음에 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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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코리스트
뉴스레터 아이디어 좀 달라고 지인들에게 부탁했었는데, 체코에 가서 쓰는 뉴스레터니까 체코리스트 코너를 만들라는 아이디어를 준 밍구와 빈에게 감사인사를 드리며 첫 체코리스트를 보고하겠습니다.
런닝 0920 1004 1027 1108 1110 1119
아침일기 1024~1120까지 1118일빼고
새로운 콘텐츠 유럽길거리에서글자모으기
좋은 소식 좋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슬픈 소식 살이 쪘어요
다음 편지는 스텝으로 유럽에서 살아남기 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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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하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쯤이었다. 첫날은 수분크림을 아주 듬뿍 바르고 숙면했다. 사장님이 데리러 오지 않았다면 더 힘들었겠지. 너무 건조해서 숨쉬기 힘들다. 2시부터 6시 반까지 잤으니까 4시간 반. 자고 일어나니까 근육통이 꽤 있었다. 짐을 먼저 꺼낼 것과 나중에 꺼낼 것들을 구분하여 두는 동안, 밖에서는 민박집 8살 아기가 꺄르르하며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편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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